많은 사람이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궁금해합니다. 그런데 그 질문은 너무 크고 추상적이라서, 막상 답을 하려고 하면 막막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이해하려 시도합니다. 성격 유형 검사부터 시작해서 명상, 일기, 심리상담까지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죠.

그런데 여기에 철학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시선 하나를 더해보면 어떨까요? 바로 ‘교집합’과 ‘여집합’이라는 수학적 개념을 자기 탐색에 적용해 보는 것입니다. 이 방식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이해를 확장할 뿐 아니라, 내가 아닌 것이 무엇인지도 함께 드러내줍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문장은 스스로를 규정하는 힘을 갖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문장은 경계를 세우는 힘을 갖습니다. 우리는 그 둘 사이를 오가며, 자신만의 윤곽을 만들어갑니다.
‘교집합’으로서의 나
‘나’라는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들여다보면, 어떤 집합에 속해 있는지를 기준으로 나를 설명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내향적이고, 사색을 좋아하고, 낯선 환경보다는 익숙한 흐름을 선호하는 사람이라고 해봅시다. 이때의 나는 ‘내향인’, ‘사색가’, ‘안정 지향적 인간’이라는 교집합 안에 위치하게 됩니다.
교집합적 접근의 장점
‘이고, 이고…’로 나열하는 방식은 공통점을 중심으로 나를 이해하게 해줍니다. 이 접근은 비교적 안정적이고 정체성을 또렷하게 해주기 때문에, 자기 확신이나 소속감을 느끼기 쉽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명확해지고,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과의 연결도 쉬워집니다. 자신이 가진 특성들을 모아 교집합을 좁혀갈수록, ‘나’라는 정의는 선명해집니다.
교집합만으로 충분할까
하지만 이 방식은 때때로 나를 지나치게 좁은 틀 안에 가둘 수 있습니다. 교집합만을 기준으로 정체성을 쌓으면 나와 다른 것을 배제하거나 두려워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 내가 가진 ‘예외성’이나 ‘확장 가능성’을 놓치게 되는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방향이 필요합니다.
‘여집합’으로서의 나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문장은 처음엔 소극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때론 훨씬 적극적인 정체성 탐색이 됩니다. 예를 들어, ‘나는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와 같은 부정의 언어는 나의 중심을 명확히 해주는 통찰이 됩니다.
여집합적 접근의 힘
이 방식은 ‘아니고, 아니고…’로 나를 둘러싼 경계를 그리면서 정체성을 만들어 갑니다. 나를 이루는 성분을 밝히기보다, 나를 둘러싼 군중 속에서 내가 무엇이 아닌지를 밝혀 나가는 방식입니다. 이 접근은 특히 ‘다른 사람과 비교해 나를 이해하려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데에 유용합니다. 사회적 기준에 스스로를 맞추려 할 때, ‘여집합’적 시선은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것을 지키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부정은 자각의 도구
부정은 결코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감정적으로 불편한 것,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것을 정리해 나갈수록, 자기중심은 뚜렷해지고 깊어집니다. 내가 아닌 것을 정리할수록, 나는 점점 분명해집니다.
교집합과 여집합의 균형
어느 한 방식에만 치우치면 왜곡이 생깁니다. ‘나답다’는 느낌은 사실 이 두 가지 접근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나옵니다. ‘이것은 나고, 저것은 아니다’라는 시선은 스스로를 풍부하게 만들어줍니다. 특히 변화의 시기에는 여집합적 사고가 더 크게 작동하고, 안정의 시기에는 교집합적 사고가 중심을 잡아줍니다. 따라서 자기 탐색의 여정은 하나의 방향이 아니라, 수시로 전환되는 균형의 흐름이어야 합니다. ‘나’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발견되고 조율되는 흐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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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나를 안다’는 말은 단순한 정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와의 관계 맺기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말할 수 있으려면, 내가 아닌 것들 속에서 나를 찾아내야 하고, 내가 속한 것들 속에서 나를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교집합은 나를 안정시켜주고, 여집합은 나를 확장시켜줍니다. 그 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과정 속에, 우리는 조금씩 ‘나’를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하루, 나의 ‘이고’와 ‘아니고’를 하나씩 적어보는 건 어떨까요?
관련 FAQ
교집합적 접근은 왜 안정감을 주나요?
공통된 특성들을 통해 정체성을 구성하면 자기 이해가 명확해지고, 비슷한 사람들과의 연결도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여집합적 접근이 자기 이해에 어떻게 도움이 되나요?
내가 아닌 것을 제거해 나가며 스스로를 정리하면, 더 분명한 자기 감각이 생기고 나다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두 방식 중 하나만 선택하면 안 되나요?
한쪽에만 치우치면 정체성이 왜곡될 수 있습니다. 둘 사이를 오가면서 자기 이해가 더 깊고 유연해집니다.
부정형의 사고가 부정적인 건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정은 경계를 설정하고 나를 보호하는 힘이 됩니다. 이것 역시 중요한 자기 탐색의 일부입니다.
여집합 접근은 어떤 상황에서 더 효과적일까요?
혼란스럽거나 변화의 시기에 유용합니다. 무엇이 불필요한지를 분명히 하면 핵심을 다시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집합만으로는 나를 정의할 수 없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요?
나는 언제나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정해진 특성들만으로 나를 가두면 확장의 기회를 잃게 됩니다.
자기 이해가 어려울 때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나는 무엇이 아닌가’부터 적어보세요. 부정을 통해 긍정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 방법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써보는 게 좋을까요?
‘나는 ○○한 사람이다’, ‘나는 ○○하지 않은 사람이다’라는 문장을 적어보며 교집합과 여집합을 번갈아 탐색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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